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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Oct

역사 한국마임발달사 - 3

작성자: admin IP ADRESS: *.127.194.179 조회 수: 3110

 

 

 

< 한국마임발달사 - 3 >

 

Ⅲ. 현대마임의 시작

본격적인 현대마임의 시작은 전문적인 마임극단과 마임연기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1960년대 말부터이다.
당시 극단<에저또>가 팬터마임 워크샵과 마임공연을 시작했고, 이어 전문적인 마임연기자들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한국마임의막이 열리게 되는데, 이로써 마임이라는 장르가 한국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1960년대 실험극의 영향으로 신체표현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새로운 공연양식을 찾고 있었다.
국내 마임연기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몸짓예술을 선보였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서양마임연기자들의 팬터마임 공연이 펼쳐졌다.
육체표현에 대한 관심은 대사위주의 연극에 지친 우리 예술가들의 숨구멍과 동시에 육체표현을 향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의 회귀였다.
이렇게 현대마임은 시작되었다.

1. 극단 <에저또>의 의의


1969년 5월 극단 <에저또>가 팬터마임 전문극단을 표방하고 나왔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최초의 팬터마임 전문극단이라고 볼 수 있다.
<에저또>의 역사를 30년으로 본다면 1970년대에는 실험연극과 순수마임을 병행했고, 1980년대에는 사실주의 연극, 1990년대에는 국제연극제 위주로 활동했다.

<에저또>가 팬터마임극단을 표방한 것은 실험적인 극단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었던 것이며, 극단의 존재가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작품을 공연하는 무성격적인 극단이 아니라 분명한 특징을 갖고 있는 극단이라는 선언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에저또>의 공연은 본격적인 팬터마임 공연을 보여 주었다기보다는 벽돌나르기, 밧줄타기, 바이올린 조율 맞추기, 2층계단 오르다 일어나는 사건과 같은 몸짓흉내나 에피소드등을 간단히 보여 주는 것들이었다.
1969년 5월에 첫 마임공연을 가졌다.

<에저또>의 1기 출신으로는 정호영, 전유성, 김종찬등이 있었고, 1970년대 초반에는 유진규, 김성구, 김동수, 후반에는 윤석, 박상숙등이 배출되었다.

<에저또>가 마임극단으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지 않으나 두가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우선 국내 최초로 마임극단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현재 활동중인 많은 마임연기자들을 배출했다는 것이다.

2. 1970년대 마임연기자들의 등장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마임연기자 두세명이 지속적으로 공연을 갖기 시작했다. 유진규, 김성구, 김동수로 대변되는 이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이끌어가게 되는데 유진규와 김성구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1) 최청(1941~ )
최청은 현재 마임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1960년대 초 중앙배우예술학원에서 한대수에게서 판토마임을 배웠다.
롤프 샤레가 내한 했을 당시엔 그는 롤프 샤레 앞에서 자신의 판토마임을 보여 주고 몇가지 지적도 받았었다. 그는 <에저또>와 몇 몇 작업들을 같이 했었고, 또한 <에저또>대표 방태수가 강의했었던 덕성여자대학교의 수업에서 자신의 마임을 선보이기도 했다고한다.
현재 그는 연기활동보다는 창작에 의욕을 보이고 마임은 이제 대본이 우선 정리된 후에 만들어져야 발전한다는 것을 반복 강조했다.

2) 유진규
유진규는 한국마임의 정착에 있어 큰 몫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의 마임연기자들 중 김성구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김성구가 장기간 해외에 다녀온 동안 우리나라에 마임을 대중화시킨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1972년 그는 국내 처음으로 마임 개인발표회를 가졌다. 첫 작품은 <첫 야행>으로 이는 후에 <억울한 도둑>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는 건국대 수의학과를 그만두고 연극에 몸담게 되는데 극단 <에저또>에서 전위연극, 실험연극의 한 형태로써 마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양의 전통마임을 배운 것이 아니라 말없는 세계, 몸짓으로 심리상태나 상황을 묘사할 수 있는 독특한 무언극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가 1975년 공연제목으로 <육체표현>을 사용한 것 또한 의식적으로 판토마임을 거부하려는 의도에서였고, 1977년의 <발가벗은 광대> 또한 판토마임연기자라는 광대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하는 뜻에서 붙인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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